국제웰빙전문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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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철학박사 자격 과정 중에서 제7강을 마치며

  • 박성옥
  • 2025-07-18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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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곧 행복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이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나 물질적 만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덕을 실현한 탁월한 삶이다. 교육의 목적 역시 여기에 있었다. 그는 교육을 통해 한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계발하고 도덕적 습관을 형성하며, 공동체적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 곧 행복 인문학을 앞장서서 구축해 온 국제웰빙전문가협회가 추구하는 교육론과 닿아있다.

그의 철학은 이렇게 묻는다.

“교육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인간을 무엇으로 빚어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질문은 2,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상을 길러내고 있는가?

 

“탁월한 인간”의 양성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교육은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도덕적 덕의 함양이다. 그는 인간이 본래 선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습관과 훈련을 통해 선해진다고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정의, 절제, 용기 같은 덕목을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그가 강조한 교육의 기초였다.

둘째는 지적 덕의 계발이다. 이성적 사고, 철학적 탐구, 실천적 지혜(phronesis)의 함양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숙의 과정이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교육은 그 이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교육은 결코 개인의 성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교육은 폴리스(polis), 곧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위한 시민 양성이라는 사회적 지향성을 담고 있었다. 개인과 공동체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개인이 덕 있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공동체도 번영할 수 있었다.

성취를 위한 훈련인가, 인간다움의 성숙인가?

오늘날의 교육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우리는 ‘입시 성공’, ‘취업 경쟁력’, ‘4차 산업혁명 대비’와 같은 말들을 교육의 목표로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이 목표들은 대부분 도구적 가치에 치우쳐 있다. 교육은 더 높은 연봉, 더 좋은 지위, 더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듯 보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무엇이 되었는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가?”

오늘의 교육은 기술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탁월할지 모르나,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삶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말을 아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탁월한 기술자를 양성하지만, 탁월한 인간은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앙의 관점에서 본 “탁월함”과 교육

성경 또한 인간의 교육과 성장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었다. 그분은 질문하시고, 삶의 현장에서 가르치시며, 본을 보이셨다. 그 결과 제자들은 단순한 배움의 차원을 넘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라는 말씀처럼, 신앙 교육의 목적도 인간다움의 회복이며 세상을 밝히는 탁월한 존재로의 성숙이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 변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의 형성과도 맥이 닿아 있다. 습관을 통한 덕의 형성과 성령을 통한 내면의 변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발견한다. 즉 말과 행동의 변화! 곧 삶의 변화가 교육의 목표이다.

 

다시 묻는 질문: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오늘날 교육의 위기는 무엇때문인가? 곧 인간다움의 위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접어들며 인간의 역할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인성이 파괴되고 심성이 망가진 정신병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술적 탁월성만으로는 이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철학박사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의 창시자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듯이, 더 절실하게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 덕을 회복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듯,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셨듯, 교육은 다시금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이 덕을 실천하고, 공동체의 선을 위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한 인격으로 서는 것—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참된 목적이 아닐까?

 

탁월함을 넘어 성숙함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는 결국 자기 안에 있는 건강한 잠재력을 꽃피우는 삶으로 접근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우리가 교육을 통해 양성해야 할 인간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관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교육의 의미는 더 깊다. “교육은 영혼의 돌봄”이라고 행복철학에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교육은 인간을 탁월한 존재로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성숙한 존재로 이끄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행복철학적 관점에서 오늘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교육을 내 삶에서 살아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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