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 뮤 니 티
국제웰빙전문가협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곧 행복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이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나 물질적 만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덕을 실현한 탁월한 삶이다. 교육의 목적 역시 여기에 있었다. 그는 교육을 통해 한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계발하고 도덕적 습관을 형성하며, 공동체적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다. 곧 행복 인문학을 앞장서서 구축해 온 국제웰빙전문가협회가 추구하는 교육론과 닿아있다.
그의 철학은 이렇게 묻는다.
“교육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인간을 무엇으로 빚어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질문은 2,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상을 길러내고 있는가?
“탁월한 인간”의 양성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교육은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도덕적 덕의 함양이다. 그는 인간이 본래 선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습관과 훈련을 통해 선해진다고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정의, 절제, 용기 같은 덕목을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그가 강조한 교육의 기초였다.
둘째는 지적 덕의 계발이다. 이성적 사고, 철학적 탐구, 실천적 지혜(phronesis)의 함양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성숙의 과정이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교육은 그 이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교육은 결코 개인의 성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교육은 폴리스(polis), 곧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위한 시민 양성이라는 사회적 지향성을 담고 있었다. 개인과 공동체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개인이 덕 있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공동체도 번영할 수 있었다.
성취를 위한 훈련인가, 인간다움의 성숙인가?
오늘날의 교육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우리는 ‘입시 성공’, ‘취업 경쟁력’, ‘4차 산업혁명 대비’와 같은 말들을 교육의 목표로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이 목표들은 대부분 도구적 가치에 치우쳐 있다. 교육은 더 높은 연봉, 더 좋은 지위, 더 효율적인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듯 보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묻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무엇이 되었는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가?”
오늘의 교육은 기술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탁월할지 모르나,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삶인지에 대해서는 점점 말을 아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탁월한 기술자를 양성하지만, 탁월한 인간은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앙의 관점에서 본 “탁월함”과 교육
성경 또한 인간의 교육과 성장에 대해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었다. 그분은 질문하시고, 삶의 현장에서 가르치시며, 본을 보이셨다. 그 결과 제자들은 단순한 배움의 차원을 넘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라는 말씀처럼, 신앙 교육의 목적도 인간다움의 회복이며 세상을 밝히는 탁월한 존재로의 성숙이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 변화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의 형성과도 맥이 닿아 있다. 습관을 통한 덕의 형성과 성령을 통한 내면의 변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발견한다. 즉 말과 행동의 변화! 곧 삶의 변화가 교육의 목표이다.
다시 묻는 질문: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오늘날 교육의 위기는 무엇때문인가? 곧 인간다움의 위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접어들며 인간의 역할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인성이 파괴되고 심성이 망가진 정신병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술적 탁월성만으로는 이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철학박사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의 창시자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듯이, 더 절실하게 인간의 본질적 가치와 덕을 회복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듯, 그리고 예수님이 그러셨듯, 교육은 다시금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이 덕을 실천하고, 공동체의 선을 위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한 인격으로 서는 것—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참된 목적이 아닐까?
탁월함을 넘어 성숙함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는 결국 자기 안에 있는 건강한 잠재력을 꽃피우는 삶으로 접근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우리가 교육을 통해 양성해야 할 인간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앙적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관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교육의 의미는 더 깊다. “교육은 영혼의 돌봄”이라고 행복철학에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교육은 인간을 탁월한 존재로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는 성숙한 존재로 이끄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행복철학적 관점에서 오늘도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교육을 내 삶에서 살아내고 있는가?”
박성옥 예비 행복철학박사님!
행복철학박사 과정을 학습하시면서 그동안 전북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셨던 학문적 깊이가 잘 녹아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문학과 동양철학을 전공하신 학자이시지만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다이모니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신앙과 잘 연결시켜 가시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부연하자면, 잘 아시겠지만 중세서양철학은 크게 두갈래로 대립하거나 발전해 왔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21세기인 생명자본시대에서도 여전히 대립 중이고 논의 중입니다. 하나는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을 이어가는 어거스틴 같은 교부철학이고, 또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을 이어가는 아퀴나스를 비롯한 스콜라철학입니다. 수도원운동이나 금욕주의, 성과 속을 구별하는 등과 같은 교회의 신학이나 교리들은 교부철학의 맥락이고, 인간에 대한 가치 발견과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숨통을 트여주는 르네상스 운동의 깃점이 되는 것은 언급하신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철학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행복 인문학을 학습하고 적응할 때 우리의 고민은 어느 노선을 따를 것인가입니다. 즉 죽어서 천국가자고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냐?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현재를 천국으로 만들자고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냐? 이러한 것이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의 천국을 생각하는 사람은 플라톤적인 사상가가 되는 것이고, 현재 삶의 변화를 통해 행복을 누리겠다는 현실 참여적인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을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25년간 웰빙과 행복에 대한 고뇌와 더불어 다양한 행복 프로그램들을 최초로 만들어 정부기관에 등록시킨 국제웰빙전문가협회 수퍼바이저인 저는 비록 석박사 과정에서 플라톤 철학을 한 사람이지만, 제가 25년간 청춘을 바친 행복 인문학은 지극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실에 대한 고뇌를 토대로 드디어 행복 인문학의 소중한 결실인 인문대학의 자격증 프로그램의 미래적 가치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행복 인문학이란 인간의 삶을 철학적으로만 아니라 행복학적으로 사유하며 행복의 본질과 실천 방법을 탐구하는 신학문입니다. 행복 인문학은 명상이나 알아차림 등과 같이 단순하게 긍정성의 강화운동이나 웃음치료 같은 얄팍한 행동들이 아니며, 철학, 신학, 문학, 역사, 심리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의학, 상담학 등 다양한 학문들과의 학제간 융복합 지식을 토대로 하여, 궁극적으로는 개인과 공동체의 참된 행복을 이해하고 구현하는 실천적인 인문학입니다.
그래서 행복 인문학은 오늘 글에서 정리하여 발표하신 박성옥 예비 행복철학박사님의 생각처럼 "인간다운 삶을 캐묻는 인문학일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건전하게 사유하여 더 인간답게 공동체에서 조화를 이루며 행복한 삶을 실천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를 핵심으로 탐구하는 21세기 생명자본시대에 정점에 있는 실용적 가치를 품은 신학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행복 인문학이 이 시대에 필요할까요? 그것은 기술과 자본 중심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인성은 메말라가고 맘모니즘의 수전노가 되어 미치광이가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순한 경제적 풍요만으로 참된 만족감은 얻지 못하고 기걸에 걸려든 무뇌아들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진정한 성찰,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와 존중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절대 위기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주 쉬운 예로 현대인들 대부분이 험한 말과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범죄를 쉽게 범하고도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 시대가 얼마나 미쳐가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속 가능한 웰빙과 행복을 위한 실천적 지혜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고 그 대안이 바로 행복 인문학인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행복철학박사 자격과정이나 행복교육박사 자격과정, 행복인문박사 자격과정, 휴먼디자인박사 자격과정 등에서 펼쳐가는 행복 인문학의 학습 내용들은 다음 몇 가지의 기둥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중심적 기둥입니다. 우리의 행복 인문학은 인간의 존엄, 감정, 관계, 삶의 질 등을 중심으로 건강하고 건전하게 사유하게끔 합니다.
둘째, 철학적 기둥입니다. 우리 행복 인문학도들은 끊임없이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행복을 추구하는가 등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셋째, 실천적 기둥입니다. 우리 인문대학 동문들은 아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교감하여야 합니다.
넷째, 치유와 성장의 기둥입니다. 우리는 나의 자아부터 성찰하고 치유하며 공동체의 웰빙을 위해 진리와 정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치유가 가능합니다.
행복 인문학의 이러한 골격에서 저는 2000년부터 10년간 웰빙코칭아카데미를 통해 성직자, 신학생, 중등교사들을 대상으로 웰빙 코칭을 진행했고, 2011년부터는 국제웰빙전문가협회를 통해 행복지도사, 행복교육사, 행복상담사, 행복 코디네이터 등을 정부에 등록하며 교재를 출판하였고, 이 기간동안 5년간 연세대학교 등에서 명품강사아카데미와 대한민국명강사개발원을 설립하여 300여명의 명품강사와 명강사를 육성하였습니다. 그리로 이러한 노력은 행복 코디네이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였고 127명의 대학교수급에 해당하는 행복 코디네이어 책임교수를 육성하게 되었으며, 이들 중에서 자기성찰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 공공기관이나 학교 등에서의 인문교육 활동, 노인이나 직장인 대상의 행복상담, 인성, 생명존중, 사회복지, 소통과 상담, 웰빙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강의하는 전문가들 상당수가 배출되어 활동 중입니다.
이제 우리 국제웰빙전문가협회는 이렇게 25년간 탄탄하게 다져온 철학, 심리학, 행복학 등을 토대로 하는 행복 인문학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에게 내면의 건강과 웰빙의 방법을 제시하며, 지식인으로서가 아니라 실천가로서의 행복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인문대학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북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학습하신 박성옥 목사님이 행복철학박사 자격과정 1호로 열공하시며 동문소통광장에서 자신의 학문적 소견을 간간이 드러내며 행복 인문학의 발전을 도모해 주시는 것에 대하여 협회장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박성옥 행복철학박사님과 같은 실천적 지헤를 에로스하는 많은 동문들이 생겨나기를 기대합니다.
비가 많이 오는 이 새벽에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전국에 수해로 피해입는 분들이 없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열기 닫기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 1 | 행복철학박사 자격 과정 중에서 제7강을 마치며 | 박성옥 | 2025-07-18 | hit6543 |
| 2 | reply 행복철학박사 자격 과정 중에서 제7강을 마치며 | 김용진 총장 | 2025-07-19 | hit64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