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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복철학박사자격, 제 9강 '현대사회이론'을 마치며....
얼마전 오래된 한 인터뷰를 보며 '이것이 사회문제구나' 란 생각을 했다. 불 꺼진 방 안의 한 청년은 새벽 2시, 서울의 한 오피스텔. 작은 방 안에는 한 줄기 불빛도 없었다. 노트북 화면만이 어둠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 안에는 화려한 가상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현실의 이름은 준일이였지만, 메타버스 속에서 그는 ‘루카스’였다. 디지털 아바타를 꾸미고, 가상의 집과 가상의 직업을 갖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현실의 준일은 며칠째 혼자였다. 휴대폰에는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번 찍혀 있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가상세계에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준일의 이 한 마디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대한민국, 겉은 화려하지만…
우리는 종종 대한민국을 “성공한 사회”라 부른다. 초고속 인터넷, 세계적 기업, 한류 문화의 세계적 인기. 그러나 그 화려한 외피를 벗겨내면 다른 현실이 있다. 극심한 경쟁, 세계 최저 출산율, 고립된 노년층, 그리고 번아웃에 빠진 청년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술과 경제의 발전이 우리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소외와 인간다움의 위기
어느 철학자는 기술 문명이 인간을 “도구화”한다고 경고했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대가는 소외였다. 에리히 프롬은 이를 “존재의 상실”이라 불렀다. 인간은 무엇을 소유하는가에만 집착하면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는 잃어버렸다.
신학적으로도 이 문제는 심각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지만(창 1:27), 우리는 그 형상을 소비와 효율의 우상에게 내어주었다.
현대 사회론 핵심 이슈들
기후위기와 생태의 위기는 기술 중심의 발전이 초래한 가장 큰 그림자다. 폭염, 산불, 미세먼지, 그리고 점점 짧아지는 사계절.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이 지구를 병들게 했다. 신학적으로 창세기 2:15은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어 지키게 하셨다”고 말한다. 지구는 소모품이 아니라 돌봄의 대상이다.
초고령사회와 돌봄의 위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독거노인, 노인 빈곤, 돌봄노동의 사회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에서 노년은 고립과 빈곤의 다른 이름이다. 교회와 지역사회는 이제 돌봄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AI와 일자리, 인간의 역할 위기, AI와 자동화가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기술은 생산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인간의 역할을 축소시킨다. 우리는 “일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한다. 신학적으로도 일은 단순히 생계수단이 아니라 소명이다(창 2:15).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 수준의 소득 양극화와 부의 집중 문제를 안고 있다. “공정”은 청년 세대의 절박한 요구가 되었지만, 여전히 기회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교회는 이 시대의 공의(사 1:17)를 회복하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
정신 건강과 웰빙의 위기, 현대인은 외로움, 불안, 우울증에 시달린다. SNS는 연결을 약속하지만 오히려 고립을 심화시킨다. 심리학자들은 번아웃을 경고하지만, 영혼의 공허함은 약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마 11:28)고 하신다. 영적 회복이 절실하다.
디지털 권력과 감시 사회, 데이터 경제와 플랫폼 자본주의는 새로운 권력 구조를 만들었다.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는 현실이 되었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의 윤리적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깊이 묻는 사회만이 미래를 가진다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 성숙한 사회란 무엇인가? 기술과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가장 약한 사람까지 존엄을 누릴 수 있는 사회다. 개인이 고립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회다.
미래 사회를 위한 실천적 제언으로 인간다움을 지키는 정책과 교육이 필요하다. 철학과 신학 기반의 가치교육을 학교와 사회에 확산해야 한다. 교회가 공동체 연대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각 개인이 영적·철학적 훈련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미래는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다. 오늘 우리의 성찰과 실천이 그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를 남길지 결정한다. 기술과 경제로만 미래를 채울 것인가? 아니면 인간다움과 공동체성으로 그것을 완성할 것인가? 성숙한 사회로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부르시는 참된 길이다.
박성옥 예비 행복철학박사님!
오늘 아침 5시, 요양원에 보낼 파도 뽑아서 다듬고 고추와 피망과 파프리카도 한 봉지 따고 손씻고 사무실에 들어와서 인문대학에 접속하고 보니 아주 흐뭇했습니다. 국제웰빙전문가협회의 행복 인문학을 잘 이해하시고 행복철학박사 과정에서 학습을 하시면서 충실히 강좌마다 자신의 학문적 입장을 영성을 가미하여 올려 동문박사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문대학의 귀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 점을 감사드리며 박성옥 예비 행복철학박사님의 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양념으로 가미해 보겠습니다.
박사님이 올리신 글에서는 디지털 시대와 기술문명이 가속화되는 오늘날의 사회 문제들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으며, 특히 정신적‧영적‧공동체적 상실을 성직자의 관점에서 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행복 인문학적 관점에서 감히 제가 비평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다층적 분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행복”의 상실과 왜곡: 가상과 현실의 괴리
글 속의 ‘준일’은 현실에서의 단절과 고통을 피해 메타버스 세계에서 아바타 ‘루카스’로 살아갑니다. 이는 디지털 사회에서 청년들이 경험하는 자기 상실과 행복의 왜곡을 보여줍니다.
일부 청년들의 이러한 엄연한 현실에 대해 행복 인문학자로서의 비평은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행복은 관계성과 자아의 통합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가상세계의 ‘루카스’는 진정한 자아와 분리된 ‘탈현실적 존재’로, 외적 자극과 소비된 정체성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말한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 사이의 갈등과 맞닿아 있으며, 자기 실현(Self-actualization)이 결여된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행복 인문학을 학습한 행복 코디네이터들의 행복 멘토링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기술문명과 인간다움의 붕괴
기술과 경제는 발전했지만 인간 내면과 공동체는 붕괴되고 있다는 박사님의 성찰은, 행복의 조건을 기술로 환원시킨 현대 문명의 한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도덕적 감수성, 공동체 속의 소속감, 존재의 의미 추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우리 행복 인문학도들이 강조해야 할 분명하고 확실한 팩트입니다. 저는 이것을 ‘감사-존중-나눔의 실천=진정한 지성인’이라는 공식으로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기술 중심 사회는 인간을 효율과 생산성의 수단으로 축소시키며, 도구적 인간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흰 옷을 입고 조심해도 연탄재 옆을 지나치면 저절로 검뎅이가 묻어 옷이 더러워지듯이, 우리 사회는 악의 세력이 훨씬 파워풀하게 작동하는 미친 세상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 행복 인문학도들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다움’과 ‘존엄성’을 중심에 둔 삶의 방식을 재구성해야 함을 강조하고 실천의 숙제를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불안과 번아웃, 정신적 웰빙의 붕괴
박사님의 지적처럼, 정신건강의 위기와 SNS로의 자발적이고 확증편향적 고립은 21세기 과학기술사회가 제시하는 ‘행복한 사회’의 허상과 위선을 드러냅니다. 외적 성공과 연결성은 있지만 정서적 빈곤과 영혼의 공허는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자살률, 조현병 등도 그 사례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문대학에서는 웰빙(well-being)은 단순한 심리적 안정이 아니라, 자기 수용, 관계성, 목적의식, 가치 지향이 통합된 상태임을 지적하며 행복 멘토링의 전문가를 육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25년간 구축해 온 행복 인문학은 “오늘 이 환경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인간학을 뛰어넘는 질문을 던지며, 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영적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2000년도에 속리산에서 시작했던 웰빙코칭아카데미와 자연치유학교의 핵심 주제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내린 결론은 정신 건강의 문제가 단지 약물이나 의료적 처치로 조절해 보자는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의미와 목적이 결여된 삶에 대한 인문학적 대응, 더 나아가 행복 인문학적 솔루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궁극적 해답이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넷째, 사회 구조와 공동체의 붕괴: 돌봄의 위기와 불평등
박사님의 단호한 지적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 일자리 위기, 불평등 심화 등으로 인하여 개인의 행복이 구조적으로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하고 부당한 환경에서 우리 인문대학의 행복 인문학도들은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할까요? 행복은 개인적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의해 상당부분 좌우됩니다.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개인의 행복 추구는 고립되고 소외될 수밖에 없으며, 연대적 공존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돌봄의 부재는 공동체 해체를 상징하며, “서로 돌아보며 협동으로 삶을 강화시키는 원리”는 행복 인문학의 핵심 가치이며, 행복 코디네이터 운동의 핵심 방향성입니다. 박성옥 행복철학박사님의 역할은 이러한 운동을 교회에서 신도들을 중심으로 펼쳐가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섯째, 미래 사회를 위한 제언: 인간 회복과 교육의 역할
박성옥 행복철학박사님은 기술이 아닌 인간 중심의 가치 회복, 철학·신학 교육, 공동체 회복의 실천이 절실하다고 제언하셨는데 제가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하는 행복 인문학적 접근과 일치합니다.
행복은 학습되고, 연습되고, 실천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갖는 독보적인 생명력의 최고되는 가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 인문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삶의 방향성과 내적 성장을 위한 인문적·영적 훈련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는 단지 개인의 몫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윤리적 실천 목표를 초월하는 전인류적 과제가 됩니다.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는 사람이 곧 바른 지식을 가진 지식인이며, 이러한 지식을 덕스럽고 훌륭하게 현장화 하는 실천가가 진정한 지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동체적 교육, 나눔과 돌봄의 가치, 영혼의 성장을 강조하는 교육이 진정한 ‘행복 사회’를 구축하는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와 국제웰빙전문가협회 인문대학은 죽은 지식에 함몰된 사이비 지식인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감사-존중-나눔운동의 실천’으로 잔잔한 인향만리를 퍼트리는 진정한 지성인을 많이 육성하는데 목표가 있습니다. 이 일에 박성옥 행복철학박사님도 적극 동참해 주셔서 우리 인문대학 박사단의 자랑스러운 지성인이 되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의 구조적 모순, 기술 중심 사회의 비인간성, 영적 공허와 공동체 붕괴 등을 심도 있게 진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행복 인문학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박성옥 목사님은 그것을 분명히 짚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존재의 의미, 관계의 회복, 공동체적 연대, 정신적‧영적 성장 등과 같은 것을 잡학다식한 지식인이 아니라 박학다식하되 실용적이고 현장화 해야만 하는 아르케와 알레테이아를 일관되게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식과 가치관의 혼돈과 왜곡 등으로 갈팡질팡하는 현대사회의 진정한 회복은 인간성 회복과 가치 중심의 전환에 달려 있음을 역설할 수 있고 또 행복인생경영으로 멘토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성옥 목사님의 행복 인문학의 실천적 문제의식, 우리 시대에 필요한 철학적 방향성과 윤리적 실천을 잘 보여준 제시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하여 육체의 소욕에 지배를 받는 저는 위장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려고 조금 전 딴 풋고추 몇 개 들고 집으로 올라갑니다. 오늘부터 더워지는 한여름의 폭서를 행복 인문학으로 잘 이겨가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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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메타버스 속 청년,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 박성옥 | 2025-07-20 | hit6651 |
| 2 | reply 메타버스 속 청년,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 김용진 총장 | 2025-07-21 | hit740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