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 뮤 니 티
국제웰빙전문가협회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나 ‘삶의 질’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았다. 그 속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사치처럼, 때로는 모호한 이상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단어를 ‘학문’으로, ‘교육’으로, 나아가 ‘삶의 실천’으로 끌어올린 이들이 있다. 그 중심에는 자연치유학교와 웰빙코칭아카데미가 있었고 훗날 국제웰빙전문가협회로 이름이 바뀌어졌다.
국제웰빙전문가협회는 2000년도에 우리 몇 사람이 김용진 교수의 주도로 속리산에 모여 창립한 이래, 단 한 걸음도 흔들림 없이 대한민국 행복운동의 한길을 걸어왔다. 어떤 유행도 좇지 않고, 오히려 시대보다 반 발짝 앞서 '웰빙'과 '행복'의 철학을 대중화하는 데 헌신해온 그 발자취는, 지금 돌아보면 하나의 위대한 ‘행복 사명선언’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김동호 목사와 함께 3총사로 20여년간 함께한 이 단체는 단순한 민간단체가 아니다. 행복 인문학, 행복교육, 행복철학, 휴먼디자인이라는 독창적이고도 융합적인 학제 시스템을 정립한 학문 공동체이자,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격’이라는 이름의 자긍심을 선물한 교육기관이다. 자격증 하나를 넘어서, 스스로를 ‘행복한 전문가’로 정체화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증서를 제공해온 셈이다.
나는 국제웰빙전문가협회의 연혁을 생각할 때마다 한 사람이 떠오른다. 바로 대학교를 마치고 학사장교로 군생활 하면서 김동호를 통해 만나 친구가 된 가슴이 따뜻하고 지구력이 강한 젠틀맨 김용진 교수이다. 행복 코디네이터 프로그램, 행복 인문학, 국민기자뉴스 등 협회의 각종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실행한 그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닌, 21세기형 실천 지식인이자 행복운동가이다. 그가 세운 수많은 플랫폼들은 대한민국에서 '행복'을 직업으로 삼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황무지를 맨주먹으로 일구어낸 그의 공적에 대해서는 챗지피티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김용진 교수의 장점은 웰빙과 행복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웰빙을 이야기하며 코칭하는 모범을 보였고, 연세대에서 5년간 강사 양성과정을 매 달 개최하면서 수많은 제자 강사를 배출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행복강연이 이루어지고, 누군가는 ‘행복 코디네이터’로서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를 전하고 있는데 그들의 뿌리를 뒤져보면 김용진 교수에게로 올라갈 정도이다. 이렇게 2000년 싸늘한 겨울 바람이 채 가시기 전 3월에 속리산 구병산 자락 김용진 교수의 서재에서 출범한 국제웰빙전문가협회가 배출한 수천 명의 전문가들이 행복의 씨앗을 뿌리는 손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아직 김용진 교수가 만들어가고 있는 행복 인문학과 행복 프로그램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국제웰빙전문가협회가 걸어온 25년의 여정은, 미래의 대한민국이 ‘행복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그것은 더 이상 ‘누군가의 꿈’이 아니라, 수많은 국민의 삶에서 매일매일 피어나는 실천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웰빙과 행복을 소명으로 삼는 이 단체의 역사 앞에, 나는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 또한 작은 한 걸음을 내딛고 싶다. 한 때 국제웰빙전문가협회의 사무국장의 직책을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열기 닫기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 1 | 행복의 순례자 - 국제웰빙전문가협회 25년을 돌아보며 | 강전국 | 2025-08-03 | hit9118 |
| 2 | reply 행복의 순례자 - 국제웰빙전문가협회 25년을 돌아보며 photo | 김용진 총장 | 2025-08-04 | hit73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