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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웰빙전문가협회
관덕보 행복학교 1차 강의안: 지성인 대상 철학분야
① 1회차 강의: 노자와 붓다가 추구한 행복
* 노자(老子)는 인위적인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통한 자연스러움과 순리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진정한 행복은 만물의 근원인 도와 합일하는 무위(無爲)의 삶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하였다. 노자는 <도덕경> 33장에서 “知足者富(족함을 아는 자가 부유하다)”라면서 행복을 외부의 재화나 권력, 명예에서 찾지 않았다. 즉, 행복은 욕망 충족이 아니라 욕망을 줄이는 소박한 삶에서 얻고자 하였다. 노자가 추구한 행복관은 서양의 쾌락주의나 의무론적 행복관 과는 달리 비움과 관조, 순응과 조화를 통한 평온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행복관은 욕망관리와 절제, 자연 순응의 관조, 무위와 도법자연을 강조한 동양적이고 내면적인 자유론이다. 그러나 현시대의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내면의 정적인 평온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실용적이고 적극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 또한 사회적, 관계적 행복 요소의 강화와 물질적인 안정과 개인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현대적인 삶이라는 측면에서는 부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노자는 인간의 욕구에 따른 적극적인 성취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순응적 이치에 따르는 형이상학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였다. 그는 행복을 두고서도 스스로 그러함을 따른다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의 관조적인 삶을 최고의 행복으로 삼았다. 이는 고대 에테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데오리아(Δεωρία, 진리의 관조)를 추구한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이는 물질적 성취나 감각적 쾌락을 넘어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삶이 인간 존재의 가장 고귀한 가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노자는 욕망과 집착을 줄일수록 행복은 깊어진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이러한 자연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입장은 행복 인문학에서 중요시하는 성찰과 관계 속에서의 행복을 모색하는 노선으로 연결되어 인위적인 경쟁이 아니라 공존을 모색하는 삶이 진정한 행복임을 보여주고 있다.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의 노자의 철학사상은 마음의 비움과 평정에서 오는 심리적 행복, 비쟁(不爭)과 상생에서 비롯되는 관계적 행복, 자연과의 합일적인 삶을 통한 존재론적 행복이라는 3가지 축과 맞닿아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노자 철학으로부터 과잉의 시대에 비움의 철학으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를 치유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오늘날의 행복 담론이 성취나 소유 중심이라면 노자는 존재 그 자체의 평정과 순응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한다. 요컨대, 인간은 억지로 행복을 쫓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감으로써 행복에 이르는 존재이다. 그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무위이화(無爲而化)의 행복이며 물처럼 흐르되 다투지 않는 상선약수의 인생인 것이다.
* 붓다(Buddha)가 추구하는 행복은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궁극적 자유를 의미한다. 그의 행복을 이해하려면 먼저 삶의 본질적 고통을 직시해야 하며 욕구를 줄이고 집착을 끊음으로써 찾아온다. 불교에서 행복의 실천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하고 있으며 행복의 완성은 고통의 소멸인 멸제(滅諦)와 궁극적 평화와 자유인 열반(nirvāṇa)에 있다. 석가모니의 행복관의 특징인 내적이고 영적인 행복이며 외부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달렸다. 그는 욕망을 줄이고 집착을 끊어 열반에 이르는 해탈의 상태를 곧 행복으로 보았다.
이처럼 붓다의 행복관이 내적 해탈과 열반의 자유라는 탁월한 영적 통찰을 담고 있다. 하지만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는 고통의 제거뿐만 아니라 삶의 긍정적 의미나 경험이 강조되어야 하고,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행복 요소의 강화, 현실적 삶의 조건과 조화라는 측면이 보완될 때 그의 내적 자유 개념은 현대적 행복 담론 속에서 더욱 긍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붓다가 내세운 열반의 행복은 욕망이 사라진 자유의 기쁨이지만 현대인은 대체로 쾌락적 행복과 자기실현적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서양에서의 명상법인 마음챙김(mindfulness)은 불교의 위빠사나(Vipassanā) 명상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현재의 경험을 판단 없이 관찰함으로써 욕망과 불안을 비워내는 행복의 기술이다. 붓다의 사상은 행복을 위한 욕망이 곧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역설임이 드러나고 있다. 그는 어떠한 쾌락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 긍정정신에 기반하고 있다. 붓다가 추구한 행복은 행복인문학 관점에서 볼 때 노자의 행복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의 붓다의 철학사상은 마음의 자각과 통찰을 통한 심리적 행복, 관계 속의 자비심(慈悲心)에서 비롯되는 윤리적 행복, 집착하지 않을 때(無我)의 존재론적 행복이 그 핵심적 함의를 갖는다. 붓다의 철학은 과학적 합리성과 실존적 통찰을 함께 가진 고전적 행복론이다. 그는 인간의 불행을 외부나 운명 탓으로 돌리지 않고 인간의 인식과 욕망, 행동 구조 속에서 원인을 찾았다. 이는 현시대에 심리치료, 인지치료, 명상치유 등에서 그대로 응용되고 있다. 붓다의 행복은 마음의 해방으로서의 행복인 심리적, 실존적 자유를 의미한다. 붓다가 추구한 행복인문학은 고통의 원인을 깨닫고 그것을 초월하여 평화를 얻는 길이며 그가 제시한 행복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속에서 경험하는 마음의 평화이다.
② 2회차 강의: 공자와 주희가 추구한 행복
* 공자(孔子)는 도덕적 수양을 통해 인격적으로 완성된 인간인 군자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진정한 행복을 외적인 성공이 아닌 내면의 평화와 조화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공자는 행복의 근원을 인(仁)의 실천과 덕(德) 그리고 예(禮)를 통한 조화로운 삶에서 찾았다. 행복은 혼자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현되며 예를 따를 때 인간관계는 조화롭게 되고 그 속에서 삶의 안정과 기쁨이 생긴다고 보았다. 공자는 행복의 조건으로 부귀영화가 아닌 도덕적 성실함과 내적 평온에서 행복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공자의 행복관은 도덕적인 덕과 예를 실천하며 군자로서 자기 수양을 즐기고 윤리적 공동체의 조화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에 두었다.
공자의 행복관이 도덕적 성실과 공동체적 조화를 강조한 점에서 사회적 행복론의 고전적 원형이 되었다. 하지만 행복인문학적으로 본다면 아쉬운 측면이 있다. 보다 더 개인의 심리적 주관적 행복이 강조되어야 하고,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여야 하며, 남녀 간의 성 평등과 사회적 포용성 등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공자에게서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는 삶이었다. 그는 개인적 성취가 아닌 가족, 이웃, 그리고 사회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조화로운 행복을 삶의 덕목으로 제시했고 그러한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으로 상호존중의 규범과 예절 등을 강조하였다. 공자가 내세운 군자를 행복인문학에서의 행복교수에 대입할 수 있다.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공자의 사상은 인(仁)이라는 이타심과 공감의 윤리적 행복, 예(禮)라는 공존의 지혜인 사회적 행복, 중용(中庸)이라는 내면의 균형감인 정신적 행복의 3가지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공자는 행복을 인격적 성장과 공동체적 조화 속에서 찾는 행복인문학적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는 쾌락이나 외적 성공이 아닌 덕의 완성으로서의 행복을 강조했다. 이 점에서 공자는 윤리적 휴머니스트였으며 행복은 나와 타인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행복 담론을 이루었다. 공자에게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도덕적으로 자신을 완성할 때 실현된다.
*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성리학(性理學)의 뿌리는 비록 유가이지만 그 철학적 사상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성리학은 리(理)와 기(氣)의 이원론적 구조를 토대로 하는 형이상학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유가에서 내세우는 형이하학적인 담론과는 거리가 멀다. 주희가 추구한 행복관은 쾌락이나 물질적 만족이 아니라 천리(天理)에 합당한 가치관을 통해 인격 수양과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실현되는 도덕적 삶을 추구하였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성리학은 개인적 행복과 사회적 행복을 분리하지 않았다. 주희는 행복을 개인의 수양→가정의 화목→사회의 질서→천하의 평화라는 확장적 구조 속에서의 실현을 추구하였다. 그는 도덕적 선행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천리(天理)와 합일(合一)하는 경지에서 행복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노자의 무위(無爲)나 불교의 열반(涅槃)처럼 우주와 인간이 하나 되는 경지와 상통한다. 주희의 행복관은 도덕적 실천과 사회적 책임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하지만 개인→가정→사회→천하라는 확장적 구조 속에서의 행복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희의 행복관이 공동체적 도덕적 우주적 합일을 통해 행복을 정의했지만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획일적인 도덕 질서로부터 개인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또한 위계적 공동체 관(觀)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공동체 관이 반영되어야 하며, 형이상학적인 규범을 경험적이고 실증적 자료로 재해석하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리학의 행복인문학적 가치는 내적 평정과 도덕적 자기완성 및 공동체적 조화를 통해 조화로운 행복을 이루는 데 있다. 이는 서양의 유다이모니아(eudaimonia)와 동양의 중용(中庸)을 잇는 가장 동양적인 행복인문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주희의 철학사상은 내면의 평정과 조화를 중시하는 ‘질서 회복’, 본성의 실현을 통해 얻어지는 ‘도덕적 자기실현’, 지적 성숙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학습의 행복’ 등의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주희가 추구한 행복은 천리와 인성의 합일을 통해 얻어지는 내면적 평화와 도덕적 완성이다.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은 현대사회에서 자기 성찰, 도덕적 성숙, 관계적 조화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주희의 내세우는 행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내면의 리(理)를 깨닫고 실현하는 과정 속에 있다.
③ 3회차 강의: 묵자와 장자가 추구한 행복
* 묵자(墨子)는 겸애(兼愛)와 공리적 행복을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고 남에게 이롭게 하면 하늘의 뜻과 일치하여 평화롭게 된다는 겸애를 강조했다. 묵자는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했으며 불필요한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비공(非攻)사상의 평화주의자였다. 하지만 묵자는 자신의 이러한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전쟁터를 누볐던 행동지향적인 사상가였다. 그는 초나라의 공격을 아홉 번이나 방어하였기에 농성의 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묵자의 철학사상은 애민적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면서도 실천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당시의 혼란한 사회를 바로잡고자 헌신했다.
묵자는 아는 것에 머물지 말고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철학부터 경제학, 군사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남겼다. 특히 묵자의 ‘묵변(墨辯)’이라는 독자적인 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 고대 인도의 불교식 논리학인 인명학(因明學)과 함께 세계 삼대 논리학파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수학과 물리학, 천문학, 광학 등에서도 놀라울 만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고 다른 학파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했다.
묵자는 귀족적이고 형식적인 유가의 예(禮)를 두고, 실용적이고 평등한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권력자나 기득권 등 특정인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였다. 묵자가 내세운 대표적인 아젠다는 보편적 사랑을 의미하는 겸애를 비롯하여 전쟁을 부정시하는 비공, 출신성분 구분 없이 인재를 존중하는 상현(尙賢), 허례허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절용(節用), 이름과 실제의 조화로운 일치를 추구하는 명실론(名實論), 장례를 간소하게 치러야 한다는 절장(節葬)을 주창하는 등 사치와 낭비, 과도한 의례를 비판하고 검소와 실용을 강조하면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보편적 사랑인 겸애를 실천하였다. 그는 신분 차별을 벗어나 상호존중과 배려가 일상화 될 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묵자는 겸애, 비공, 절용 등의 가치를 통해 사회의 안정과 백성들의 행복을 추구했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가치에 대하여 고민하게 한다. 어쩌면 묵자가 제시하는 행복은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하늘(天)을 도덕적 질서로 이해하고 착한 이는 상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는 보상체계로 사회적 규범과 도덕 실천이 연속되고 공동체적 행복이 유지된다고 보았다. 묵자는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한 실천적 행복인문학자였다.
* 장자(莊子)는 자유와 해탈의 행복을 주장하였다. 그의 사상은 제물론(齊物論)편과 소요유(逍遙遊)편을 통해서 그의 철학적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장주는 인위적인 행위가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그는 우리 인간이 자아의 한계를 초월하고 내면적인 평화와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음을 깨끗이 비우면서 그 마음을 가지런하게 하여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심재(心齋)사상이 그것이다. 장자는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소요유로 표현했다. 그가 내세운 소요유는 단순한 유람이나 여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초월의 경계를 넘어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적 이상향을 상징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와 세상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킴으로써 더 큰 자유와 평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는 북쪽 바다의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하여 거대한 새로 변신한 대붕은 그 날개가 하늘을 덮을 만큼 거대한 날개를 한 번 치면 순식간에 남쪽바다까지 이동하며 그 어떤 장애도 받지 않는 새이다. 장자가 제시한 대붕은 무한한 자유와 초월의 삶을 의미한다.
장자의 인생관은 고분지가(叩盆之歌)라는 퍼포먼스를 통한 아내 죽음을 대함에 있어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대자연 속에서 거닐던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장자의 철학은 경쟁과 욕망에 휩싸여 진정한 행복을 잃어버리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내면의 평화를 찾고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또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명이 발전하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그의 사상은 더욱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자는 세속적 가치와 차별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자유를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장자는 소요유편에서 붕새를 하루살이 같은 작은 생물이나 참새 등과 대비시켰다. 이러한 작은 생명체들은 비록 대붕의 거대한 날개 짓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는다는 점이다. 장주에게 대붕은 자연과 하나 되는 도인의 경지이고 참새 같은 삶을 영위하는 일반인의 가치관을 넓히게 해주는 롤 모델인 것이다. 행복 인문학에서는 참새의 시야를 확장하면 대붕처럼 무한히 높이 날 수 있다는 삶의 확장성에 대입할 수 있다. 그리고 참된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자기 구속을 넘어 내적 자유를 얻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담고 있다. 자유와 행복은 대붕이든 참새이든 모두 나름의 길이 있으며 각각의 존재성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장자는 자연과 함께하는 고요와 평화가 진정한 행복이며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자신의 본성을 찾고 그에 따르는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④ 4회차 강의: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한 행복
* 소크라테스(Socrates)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으로부터 행복 실현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즉 자기 성찰과 영혼을 돌보는 것이 곧 선(善)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무지를 극복하고 참된 선을 아는 사람만이 악을 행하지 않으며 이때 행복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행복관은 영혼의 덕과 지혜를 통해 실현되는 내적 상태를 인간 본성의 완성으로 보았다. 그는 행복을 위해 무엇보다도 자기 영혼을 성찰하고 돌보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하지만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소크라테스의 행복관은 영혼의 덕과 지혜라는 내적 성숙에 집중했지만 이를 사회적 관계, 정서적 체험, 삶의 다차원성, 경험적 연구, 공동체적 책임 등으로 확장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 즉, 행복은 단순히 내적 성찰의 결과만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조건과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현되는 총체적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자각을 통해 자기 성찰적 행복을 알려주었고, 대화법은 공동체적 행복을, 덕의 실천은 도덕적 행복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영혼의 돌봄은 내적 행복을 일러주었고 죽음의 초월은 궁극적 행복을 의미한다. ‘삶의 의미’라는 사고 개념의 철학적 배경에는 소크라테스의 성찰하지 않는 삶이나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삶의 태도는 내면 중심의 행복론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행복인문학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고대 철학자의 지적 유산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철학적 사유의 기준을 세웠고 행복인문학의 초석을 다져놓은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에 대한 자각은 자기 성찰적 행복이고, 대화법은 공동체적 행복이며, 덕의 실천은 도덕적 행복이다. 영혼의 돌봄은 내적 행복이고, 죽음의 초월은 궁극적 행복을 설명한 것이다. 그는 인간다운 성찰과 덕의 실천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우리에게 알려준 위대한 철학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인간의 고유 기능을 이성(logos)에 따른 활동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의 행복(Eudaimonia)을 이성적 활동인 덕과 함께 실천하는 삶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행복관은 인간 삶의 궁극적 목적인 덕(ἀρετή)의 실천과 중용(μεσότης)에 기반 한다. 이 때의 덕은 지적인 것과 도덕적인 덕이라는 두 가지로 구분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도와 결핍 사이의 적절한 상태인 중용에 따라 삶을 조율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행복이 실현된다고 보았다. 그는 행복을 최고선이라고 정의하면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인간 본성의 실현과 덕의 실천이라는 고전적 통찰은 제공하지만, 행복인문학 관점에서는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행복, 맥락적이고 문화적인 다양성, 관계성과 공동체 차원의 현대적 덕목의 반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개인 차원의 덕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조건이 충족되는 행복관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그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을 의미하는 폴리티콘 조온((πολιτικὸν ζῷον 사회적 존재)이라고 규정했다. 행복은 홀로 이룰 수 있는 사적 감정이 아니라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존중할 때 완성된다. 따라서 개인의 인생경영이 행복을 지향할 때 이는 곧 공동체 전체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삶의 형태 중에서도 지혜를 탐구하는 관조적 삶이 최고의 행복이라 보았다. 이는 물질적 성취나 감각적 쾌락을 넘어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삶에서 인간 존재가 가장 고귀한 완성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오리아(Δεωρία)를 인간 활동 가운데 가장 고귀한 삶의 방식으로 보았다. 그가 저술한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관조적 삶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인 유다이모니아(εὐδαιμονία)이다. 여기서의 데오리아(theōría)는 순수한 이성이 감각적, 실천적 관심을 떠나 존재의 진리를 직접 인식하는 활동을 뜻하며, 정신의 고요 속에서 세계의 질서와 일체감을 체험하는 지적 황홀에 가깝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eudaimonia)은 데오리아에 몰두하는 지성적 삶인 진리를 관조하는 삶이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적 관점에서 행복을 언급한 철학자이다. 그가 제시한 중용은 절제와 균형에서 온다는 가르침은 공동체의 건강을 유지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윤리적 덕목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관념론적 가치에서 현실 속 인간 삶의 윤리적 목표로 현실화 하였으며 행복을 철학적 개념이 아닌 실천적이고 습관적이며 관계적인 지혜로 구체화 한 철학자이다.
⑤ 5회차 강의: 에피쿠로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추구한 행복
* 에피쿠로스(Epicurus)는 쾌락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이는 감각적 탐닉이 아닌 정신의 평정으로 본 철학자였다. 그가 추구한 쾌락(pleasure)은 감각적인 쾌락이 아닌 심리적 평정 상태인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를 의미한다. 그는 욕망을 절제하고 소박하게 사는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불안 제거가 필수였다. 에피쿠로스의 행복관은 쾌락의 극대화가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고통의 부재를 실현하는 삶을 추구하였다. 그는 고통의 부재와 마음이 평정한(ataraxia) 삶이 곧 행복이라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 평정은 불교의 열반(涅槃)이나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apatheia)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오늘날의 행복인문학에서 심리적 안정, 관계의 조화, 두려움 없는 삶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는 행복한 삶에 관하여 쾌락을 추구하되 고통이 없는 평정의 상태를 이루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자연의 이해, 욕망의 구분, 우정의 윤리라는 3가지 실천 축으로 이루어진다. 우주는 원자와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이나 운명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신과 죽음의 공포라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을 행복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그는 욕망을 두고 생존에 필요한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 사치나 미식 같은 자연적이지만 불필요한 욕망, 그리고 명예나 권력처럼 자연적이지도 않고 불필요한 욕망이라는 3가지로 구분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은 욕망을 줄이고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것에 만족할 때 가능하다. 에피쿠로스는 공동체적 유대를 매우 중시하였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은 친구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우정을 영혼의 피난처로 보았다. 행복은 개인적 향락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철학은 지금의 행복인문학에서 심리적 자유와 관계적 평화 사상으로 재조명 된다. 오늘날 그의 행복론은 소유보다는 존재 자체의 행복과 외부 자극의 홍수 속에서도 내면의 평정을 찾는 실천적 철학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인문학적 의미를 갖는다. 에피쿠로스가 언급한 “지혜로운 삶은 즐겁고 즐거운 삶은 지혜롭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평화롭게 존재하는 법을 가르치는 행복인문학이다. 그는 욕망 절제, 고통 부재, 심리적 평정을 통한 내적 행복이라는 철학적 통찰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현시대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는 사회적이고 관계적인 행복 요소를 강화해야 하고 적극적인 삶과 의미 있는 경험이 강조되어야 한다. 또한 개인적 다양성과 선택이 존중되어야 하며, 현실적인 생활 조건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본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행복인문학에서 중요시 하고 있는 공감과 공동체 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서양의 중세 스콜라철학의 대표학자이자 이성과 신앙의 화해를 시도한 철학자이고 기독교 신학의 거장이다. 아퀴나스가 사유한 중심에는 단 하나의 문제인 인간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Quomodo homo sit felix)가 자리하고 있다. 그가 구축한 행복인문학은 신학적 구원론을 넘어 인간 존재의 목적론적 완성인 유다이모니아를 탐구한 깊은 인문학적 의미를 지닌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이어받아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행복을 원한다.”고 일갈하였다. 그에게 행복은 감정적 기쁨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궁극 목적이다. 행복은 인간 행위의 모든 방향을 통합하는 형이상학적 목적이기에 윤리학, 신학, 인식론 등이 행복론으로 수렴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행복을 의미하는 베아티투도(beatitudo)나 펠리치타스(felicitas)에 관한 체계적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 중에서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 중심적 행복론과 기독교 신학을 융합하여 독창적 체계를 구축하였다. 아퀴나스는 행복을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으로 정의하면서 서양적 행복관의 지적 전통을 형성케 한 중심인물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 완성으로서의 행복 개념인 유다이모니아를 수용하였다. 아퀴나스는 행복의 완성을 이성적 탁월성에서 찾는 대신 하느님과의 합일을 의미하는 비지오 베아티피카(Visio beatifica)인 신의 직관 안에서 완성된다고 보았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훗날 행복을 세속적 번영과 궁극적 행복을 달리 보는 관점의 차이로 발전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행복을 덕과 연결 지으며 사려나 지혜 등의 ‘지성적 덕’과 절제, 용기, 정의 등의 ‘도덕적 덕’ 그리고 믿음, 희망, 사랑의 ‘신학적 덕’이라는 3가지 덕목을 통합해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성적 질서의 완성과 신과의 사랑이 하나로 합쳐질 때 진정한 행복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퀴나스의 이해 방식은 행복 인문학이 강조하는 성찰, 관계, 윤리적 삶으로 해석된다. 한편 아퀴나스는 행복에 대하여 완전한 행복과 불완전한 행복으로 구분했다. 완전한 행복인 진정한 행복은 신과의 합일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상태로 보았다. 이것은 인간의 궁극 목적이며 이성의 완성과 함께 신의 은총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다. 불완전한 행복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인 덕, 명예, 사랑, 지식, 등과 같은 고귀하지만 영원하지 못한 자연적 행복이다. 이러한 구분은 현실적 조건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되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초월적 차원과의 연결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행복을 감정적인 만족이나 세속적인 성취로 한정하지는 않았다. 철학적 관점에서는 목적론적 완성이라는 덕성적 삶으로 보았으며 신학적 관점에서는 궁극적 합일로 구분하면서 철학적 유산과 신학적 유산의 조화로 성립된다고 생각하였다. 아퀴나스식 행복인문학은 인간의 이성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어 존재가 그 본래 목적인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때 실현되는 존재의 행복론이다. 그의 행복에 관한 사유는 신학적 교리 체계를 넘어 존재의 질서와 조화 속에서 완성된다는 행복인문학적 통찰을 제시하였다. 아퀴나스는 “행복이란 선(善) 안에서의 인간의 완성이다.”고 언급했다. 이는 행복이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가장 높은 형태의 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의 행복론은 르네상스 학자들에게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토대를 제공하였다.
⑥ 6회차 강의: 칸트와 흄이 추구한 행복
* 칸트(Immanuel Kant)는 의무(duty)를 다하는 삶을 강조했으며 선한 의지(Guter Wille)를 최고의 가치로 보았다. 그는 도덕 법칙을 따르는 의무의 실천에서 행복이 온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행복을 자신의 모든 욕구가 충족된 상태라고 규정했으나 인간 삶의 궁극 목적으로는 보지 않았다. 행복은 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이며 이성적인 존재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보았다. 칸트의 행복관은 행복을 인간 행위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도덕법칙의 부차적 결과로 파악한 것이 특징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도덕적 행위에 의해 보장되는 행복인 덕과 행복의 조화된 상태인 최고선에 있었다. 칸트의 행복관은 도덕적 의무와 선한 의지 중심이었으며 행복을 부차적 결과로 보는 철학적 깊이를 제공하였다.
칸트는 행복을 인간 행위의 최종 목적이 아닌 도덕적 의무 실천의 부차적 결과로 보았다. 따라서 그의 주장을 행복인문학 관점에서 본다면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도덕적 실천과 함께 정서적 웰빙을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각 개인마다의 행복을 실현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현시대의 행복관 측면에서는 행복을 실현하는 방식이 그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칸트의 행복관은 철학적 윤리적 논리 기반이어서 경험적 심리학적 연구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또한 행복의 심리학적 측정이나 행동 과학적 근거와 연결하여 도덕과 행복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검증할 필요도 있다.
칸트는 선한 의지와 도덕법칙을 따르는 행위가 참된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는 쾌락이나 결과 중심의 행복관을 넘어 윤리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존엄을 행복의 핵심 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합리주의 창시자인 데카르트와 계몽주의자인 칸트는 이성과 도덕적 자율성을 토대로 행복을 논의한 철학자이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행복은 외부 권위가 아니라 자기 안의 명석판명한 이성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행복 인문학의 자기 성찰적 기초를 만든 것이다.
칸트가 추구한 행복은 이성적 자율성의 실현이며 도덕적으로 선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 누리는 존엄한 평화의 상태이다. 이는 윤리적 행복 또는 자기초월적 행복과도 연결된다. 칸트는 행복인문학적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행복할 자격을 갖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있다. 이는 인간의 윤리적 성숙과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행복인문학적 물음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근대 경험론의 완성자이자 인간을 이성보다 감정의 존재로 본 철학자였다. 그의 철학을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행복을 이성의 산물이 아닌 정념과 도덕감의 조화로운 조절 속에서 찾으려 했다. 흄은 이성보다 정서를 더 근본적인 인간 원리로 보았으며 이를 통해 도덕적 삶의 온기 속에서 행복을 재해석하였다. 그은 데카르트나 칸트처럼 선험적 이성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흄은 인간의 정신을 지각의 흐름으로 보고 자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인상과 관념의 연속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행복은 영혼의 형이상학적 상태가 아니라 지각과 감정의 조화로운 흐름 속에서 형성되는 경험적 상태로 보았다.
흄의 철학사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제로는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결코 그 이상이 될 수 없다.”이다. 그는 인간의 행위를 이성이 아니라 정념이 이끈다고 보았다. 이성은 수단적 기능을 담당하지만 목적은 감정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흄에게 행복이란 정념이 이성의 조율 아래 균형을 이룬 상태인 감정의 조화로운 조절이다. 이는 욕망을 억압하지도, 무절제하게 방임하지도 않는 감정의 미학적 균형이 행복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흄의 행복은 개인의 쾌락적 만족이 아니라 공동체적 감정의 조화 속에서 형성된다. 이 관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적 덕으로서의 행복”에 가까우며 현대 심리학의 정서 조절이론이나 마음챙김 개념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데이비드 흄에게 행복은 도덕적 이성의 결과가 아니라 공감과 감정의 조화로 형성되는 평정의 상태이다. 그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보다는 감정적, 사회적 존재로 파악하면서 행복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공감을 통해 실현된다고 하였다. 흄과 아담 스미스는 공감과 도덕 감정의 행복 철학을 제시한 철학자였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정리한 행복의 조건으로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과 상호적 배려를 제시하였다. 행복 인문학에서 상호존중과 배려를 강조하는 것도 이들의 영향력이다.
⑦ 7회차 강의: 니체와 밴담이 추구한 행복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행복관은 전통적 철학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그는 기존의 전통적 가치를 비판하며 초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삶이 곧 행복이라고 주장하였다. 니체는 행복을 쾌락이나 평정의 상태가 아니라 삶을 긍정하고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속에서 찾았다. 그는 인간이 고통, 역경,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며 이를 통해 삶을 창조적이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행복으로 보았다. 니체는 위버멘쉬(Ubermensch, 초인) 개념을 통해 기존의 도덕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와 삶의 규칙을 창조하는 삶을 강조했다. 이는 행복을 능동적 성장과 자기완성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에게 고통과 역경은 단순히 피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 개인적 성장과 힘의 증진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보았다. 니체는 기존의 도덕, 종교적 금욕주의, 전통적 쾌락주의 모두를 비판했다. 그는 행복을 타인의 기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 창조와 삶의 긍정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니체는 행복을 정적인 평온(ataraxia)이나 고통의 부재(aponia)로 보지 않고 힘의 증진과 삶의 긍정으로 보았다.
니체는 기존의 쾌락주의, 금욕주의, 칸트적 도덕주의 이 모두를 부정했다. 그가 내세운 초인은 기존의 도덕, 종교, 전통적 가치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행복은 남이 정해 준 기준인 쾌락, 금욕, 도덕적 의무를 충족하는데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구성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니체의 행복관을 행복인문학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적 관계적 요소 부족,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평온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자기 초월과 독자적 가치 창조가 행복의 핵심이어서 공동체적 가치나 사회적 책임과는 충돌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적 맥락에서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행복인문학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니체가 언급한 위버멘쉬는 기존 규범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고 자기 의지를 발휘하는 존재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하고 창조하려는 내적 에너지를 강화시켜야 행복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위버멘쉬는 삶의 고통, 비극, 불확실성까지도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니체가 삶의 모든 면을 긍정하는 태도가 행복의 근본 조건임을 선언한 것이 바로 위버멘쉬의 삶의 모습인 ‘아모르 파티’이다. 행복 인문학에서 니체의 위버멘쉬를 행복교수로 대입할 수 있으며 자기성찰, 상호 존중, 배려 등은 핵심 미션이다.
*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근대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창시자로 행복을 철학의 중심 원리로 끌어올린 철학자이다. 그에게 철학이란 인간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이었다. 행복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벤담은 도덕의 목적을 행복의 극대화로 규정한 최초의 사상가이다. 모든 도덕적 판단과 사회제도의 목적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의 원리로 귀결된다. 이것이 바로 공리주의의 핵심이자 근대적 행복인문학의 출발점이 된다. 벤담은 행복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쾌락의 총합에서 고통을 뺀 것’으로 정의했다. 그는 이를 쾌락 계산법(hedonic calculus)으로 정량화하려 했다. 그가 제시한 쾌락의 판단 기준은 강도(intensity), 지속(duration), 확실성(certainty), 근접성(propinquity), 다산성(fecundity), 순수성(purity), 범위(extent)라는 7가지 기준으로 개인이나 사회의 행복을 계산할 수 있다고 본 것이 쾌락의 산술학이다.
벤담에게 도덕은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행복의 총량을 늘리는 행위의 기준이었다. 그는 의무나 선한 의지를 강조한 칸트의 형이상학적 윤리를 비판하며 행동의 도덕성은 그 결과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동이 옳은 것은 그것이 행복을 증진시킬 때이며 그릇된 것은 불행을 낳을 때이다.” 이 표현은 윤리의 기준은 동기가 아니라 결과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의 근본 토대가 되었다. 벤담은 행복을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 제도의 목표로 확장했다. 그는 입법과 행정, 형벌, 교육, 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실현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벤담의 행복론은 개인의 쾌락윤리에서 사회의 공리윤리를 거쳐 제도의 행복정치학으로 발전하였다.
행복인문학의 관점에서 볼 때 벤담의 사상은 행복의 민주화, 공감의 사회적 확장, 정책적 윤리의 초석이라는 3가지 중요한 가치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의 복지정책, 공공윤리, 긍정심리학의 행복지수 개념 모두 벤담의 영향을 받았다. 벤담에게 행복은 쾌락의 총합이며 윤리란 이 쾌락을 최대 다수에게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그는 철학을 감정의 위로가 아니라 사회적 행복을 계산하는 도구로 재정의 했다.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흄은 공감의 감정으로, 칸트가 이성의 도덕성으로, 벤담은 쾌락의 합리적 계산 등의 방식으로 각각 행복의 문제를 탐구했다. 결국 벤담은 “행복은 인간의 권리이자 사회의 목표”라는 명구를 남겼으며 오늘날의 공공정책, 복지철학, 행복지수 연구의 기원은 그가 남긴 “공리의 원리” 속에 있다. 공리주의 철학자 중 존 스튜어트 밀은 단순 쾌락보다 지적이고 도덕적인 즐거움을 강조하면서 질적 차원의 행복론을 전개하였다. 행복 인문학을 기반으로 멘토링하는 행복인생경영에서 효과적인 수단으로 중요시하는 개인의 질적 성장과 성찰이라는 방법론은 이들 공리주의에 근거한다.
⑧ 8회차 강의: 사르트르와 헤겔이 추구한 행복
*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그의 행복관은 에피쿠로스, 칸트는 물론 니체와도 달리 하였으며 실존주의적 자유를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그가 추구한 철학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넘어 “어떻게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자유 속에서 행복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묻는 행복인문학이다. 즉 직접적인 개념보다는 실존, 자유, 책임이라는 인간 존재의 조건 속에서 행복을 이해하려 하였다. 과거의 형이상학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본질인 인간 본래의 목적, 신의 설계, 이성의 구조를 먼저 상정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신이 사라진 현대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 아무런 본질도 지니지 않는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먼저 ‘존재’한 후에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본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인간의 행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결과라는 뜻이다.
신이 부재한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모든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르트르에게 행복이란 자유의 사용법이다. 이는 타인이 정한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선택으로 존재를 구성할 때 비록 그 선택이 고통스러워도 인간은 진정한 행복의 가능성에 다가선다는 것이다. 즉,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진정성이다. 자기기만 없이 스스로의 자유를 인식하고 실천할 때 인간은 존재의 실질적 의미를 체험하게 된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철학은 자유의 비극과 가능성의 행복인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태어날 때 고정된 목적이나 본성은 지니지 않으며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고 보았다. 이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 자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르트르에게 행복은 쾌락, 고통의 부재, 도덕적 의무 충족 같은 외적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유를 인식하고 그 자유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에 행복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진정한 행복은 자유를 자각하고 그 자유에 기초해 진정성 있는 삶으로 행복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실존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관점을 견지하였다.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사르트르의 사상은 존재의 자기창조성, 자유의 윤리, 관계적 인간학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행복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의 결과이다. 진정한 행복은 자유의 인식과 선택의 실천이라는 도덕적 행위로 성립한다. 또한 행복은 타인의 시선을 초월하면서도 그 시선을 통해 자기 존재를 정립하는 역설적 경험인 것이다. 사르트르의 행복인문학을 요약하자면 인간은 실존하고 그 실존을 통해 스스로의 본질과 행복을 창조한다. 행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이며 자유는 인간 존재의 운명이자 행복의 조건이다. 그의 철학은 인간이 불안과 부조리 속에서도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다는 존재의 희망 철학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자유 속의 행복’으로 ‘자기 결정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주제를 사유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사르트르는 기존의 전통적 행복관을 넘어 자유와 책임, 진정성 있는 실존적 삶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독창적이다. 하지만 행복인문학 관점에서는 몇 가지 보완할 것이 있다고 본다. 그는 인간이 자유롭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하였지만 그 자유는 필연적으로 불안과 책임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사르트르는 개인의 진정성을 중시했으나 공동체적 조화나 사회적 행복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또한 진정성 있는 삶은 추상적 개념으로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그 진정성을 판별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지침이 부족하다. 그리고 실존적 행복의 긍정적인 정서 차원 보완과 삶의 의미와 죽음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적 초월 대신 인간의 자유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의미나 영적 차원을 소홀히 다루었기 때문이다. 행복인문학은 죽음과 유한성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행복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를 탐구해야 한다.
*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철학은 이성을 중심으로 한 변증법적 이상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사유는 논리 체계나 인식론이 아닌 인간 정신이 자기 자신을 실현해 가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정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겔의 철학은 행복인문학과도 연결된다. 그가 추구한 사상의 핵심은 3단계의 변증법 구조인 정(正, Thesis)→반(反, Antithesis)→합(合, Synthesis)을 통해 전개된다. 그는 세계의 모든 사안을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으로 이해했다. 이 정신은 인간의 이성과 의식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간다. 그의 대표 저서인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의식은 감각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자기 인식, 이성, 그리고 절대정신에 이르는 발전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은 지적 성장만이 아니라 자유의 자각을 통한 인간 완성의 여정이다.
헤겔에게 행복은 쾌락이나 심리적 만족이 아닌 자유의 실현 속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계의 합일을 경험하는 상태이다. 그는 진정한 자유는 이성적 질서 안에서 자신을 인식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고 보았다. 즉, 행복은 자기 존재의 이성과 사회적 보편성이 일치할 때 주어지는 정신적 충족이다. 이때의 행복은 개인적 고립이 아닌 가족, 시민사회, 국가라는 윤리적 공동체 속에서 실현된다. 인간은 고립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실현할 때 행복에 도달한다. 이는 행복을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과정으로 본 것이다. 또한 인간의 자유는 무한한 욕망의 방종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행복이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기꺼이 하는 것이다. 행복은 공동체 속의 자기실현으로 개인의 행복은 사회적 윤리 구조 속에서 실현되며 가족, 시민사회, 국가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구체화한다.
헤겔이 추구한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고, 정신의 자기실현이며, 그의 행복관은 이성적 자유의 체험으로서의 행복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행복이란 순간적 감정이 아닌 인간 정신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실현함으로써 도달하는 절대적 화해이다. 헤겔에게 행복이란 “정신의 목적은 자유이며 그 자유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자기 자신과 세계가 화해된 상태인 자유의 완성으로서의 행복을 의미한다. 헤겔의 행복론은 자기 이해, 역사 의식, 자유와 윤리의 조화라는 3가지 축을 관통하며 행복의 개념을 감정이 아닌 인간 정신의 궁극적 완성으로 승화시켰다.
관념론의 헤겔과 유물론의 마르크스는 호모 사피엔스가 경험하는 역사와 사회 속에서 구체적인 행복을 추구한 학자이다. 헤겔은 자유의 실현을 역사의 목표로 보았으며 공동체 속에서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고 실현할 때 행복에 도달한다고 생각하였다. 행복 인문학에서 개인의 행복을 사회 공동체적 행복 비전과 연결시키려는 것이 헤겔의 입장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된 노동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는 것을 진정한 행복의 조건으로 보았다. 이는 행복 인문학에서 중시하는 존엄과 생명 중심의 사회 구조에 대한 학문저적 근거가 된다.
⑨ 9회차 강의: 종합 토론 및 자료 정리
9회차에는 그동안 동서양 및 시대별로 접한 다양한 철학적 관점 중에서 자신의 삶에 차용할 가치가 있는지를 행복인문학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시간이다. 행복은 정해진 공식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와 자기 성찰을 통해 매 순간 새롭게 설계되는 과정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누군가 행복을 개인적 만족이 아닌 좋은 삶과 연결하는 등등의 가치관에 따라 각각의 화두(話頭)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참고적으로 동양에서는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백가(百家)라는 학문적 가문과 제자(諸子)로 총칭되는 많은 철학자들이 출현하였다. 하지만 진나라에 이어 2번째 통일 국가인 한나라의 무제 때 소위 ‘파출백가 독존유술’이라는 학문적 철퇴(鐵槌) 조치로 말미암아 그 이후 19세기까지 2,000여 년 동안 학문적인 암흑기가 동아시아에서 이어지고 말았다. 한편 서양의 고대 철학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면서 덕과 이성을 강조하였고 중세에는 기독교 중심의 신앙과 영혼의 관점에서 행복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행복인문학의 토양을 바탕으로 하여 이어진 근대에는 이성과 권리와 쾌락 등을 토대로 행복을 논의하였다. 이 시대의 철학자 중에는 데카르트와 칸트를 중심으로 이성과 도덕적 자율성 관점에서 행복을 논의하였고 데이비드 흄과 아담 스미스는 공감과 도덕 감정적 측면에서 행복을 다루었다.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등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행복을 논의하였으며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경우 고통과 행복의 변증법적 차원에서 행복을 거론하였다.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 등은 역사와 분배의 관점에서 행복을 논의한 철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행복인문학 관련 질문
철학적 차원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행복이라 정의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때 진정으로 행복한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행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행복은 우연히 주어지는 감정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내 삶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내면 중심의 행복 추구
나는 성찰과 지혜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나는 욕망과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누구이고 어떠한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떠한 삶을 설계하고 있는가?
사회적 관점의 가치 탐구
나는 공동체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실현할 것인가?
공동체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행복은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공동체적 차원인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윤리적 차원
행복할 자격을 갖춘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떤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며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떠한 의무를 지켜야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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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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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관덕보 행복학교 강의안 1 | 임주완 | 2025-10-20 | hit11368 |
| 2 | reply 관덕보 행복학교 강의안 1 | 김용진 총장 | 2025-10-21 | hit68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