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웰빙전문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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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행복교수! 무엇이 다른가?

  • 김용진 총장
  • 2026-01-08 0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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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덕분일까? 하나는 건강하고 건전하게 생각하는 이성의 힘 때문이고, 또 하나는 체득된 지식과 지혜를 제대로 잘 전수하는 가르치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삶의 방향을 묻고 인간다움을 실천하며 행복인생경영을 돕는 행복교수가 교육자의 최고 정점에 있음을 나는 언표하고자 한다.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광장을 배회하며 진리가 무엇인가를 묻는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강단도, 교과서도 없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먹고 살아가는 것을 교환하는 시장바닥인 아고라에서 특별한 가치를 갖는 질문을 던졌고, '무지의 자각'을 통해 돼지같이 살아가던 호모 사피엔스족의 둔탁한 이성을 깨웠다. 

그리고 그의 영향을 받은 수제자 플라톤은 오늘날 대학의 효시인 아카데메이아에서 선(善)과 정의, 영혼의 질서를 아주 깊은 논리적 토론으로 가르쳤고, 플라톤에게서 20년간이나 제자로 학문을 연마한 마케도니아 출신 청년 아리스토텔레스는 훗날 행복을 쾌락이나 성공이 아닌 유다이모니아, 즉 인간다운 탁월성의 실현이라고 가르쳤다. 이렇게 시작된 교수는 지식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길을 동행하는 교사,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자격으로 허락해 주어 내가 최초로 육성하고 발급하고 있는 행복인문박사였고 행복교육박사였고 행복철학박사였고 휴먼디자인박사였던 것이다. 

이렇게 진리와 관련된 의문으로 다가오는 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치유하고 교정하고 훈련시키고자 했던 이들의 교육방법과 교육철학의 영향은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로 발전하였다. 에피쿠로스는 절제된 쾌락과 평정인 아타락시아를 말했고, 스토아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내적 자유를 가르쳤다. 아무튼 이때까지만 하여도 이들이 보여준 공통점은 분명하다. 교사는 인간의 심리적 불안을 먼저 잘 아는 전문가였고, 교사가 가진 철학의 목표는 삶을 고치고 인간답게 만들어 가는 실천 기술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토대를 기반으로 중세가 되면서 드디어 현대판 대학이라는 제도와 교수라는 직제가 자리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학과 법학과 의학이 중심이었고 대학의 교수는 가톨릭교회의 신학을 전수하는 지성적 멘토라는 존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산업사회가 주류가 되면서 산업사회의 뒷받침을 할 숙련공과 기술계발이 핵심과제가 되면서 대학과 교수의 방향에 큰 변화가 초래되기 시작했다. 또한 대학의 운영주체가 교회에서 국가나 사회단체 등으로 다변화되면서 교수는 신학이나 신앙과 무관하거나 거리가 먼 생존경쟁에 최적화된 형이하학적 지식 전문가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학이나 교수 사회의 변동이라는 조건은 결과적으로 삶의 철학적 의미와 행복인생경영에 관한 형이상학적 성찰과 같은 영역은 심각하게 약화되면서, 실용주의라는 명분하에 물질적이고 명예적인 부분 등으로 교수의 교육 영역과 성격 등에 질적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의 교수는 실용기술 분야 등에서는 뛰어난 지식과 전문성의 소유자일수는 있다. 그러나 교수의 본래 기술이던 행복인생경영 전문가로서는 매우 부족한 소양을 가진 기이한 형태의 교수로서 직업인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명백히 불편한 사실앞에서 나는 행복 인문학 창시자로서 현대사회에 박사 학위 취득자나 교수라는 직업인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지만, 교수의 정점에서 그 본질인 인간다움을 가르치는 필로소피아 즉 지혜의 전수자인 교수나 대학은 점차 소멸되고 있는 불행한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의 량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정말 인간다움을 강화시키는 교수가 아니라면 그는 자칫 형이하학적 지식에 대한 교만이나 위선 등으로 포장된 고대 그리스의 궤변론자인 현대판 소피스트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할 여지가 높아진다. 

그래서 이처럼 변질된 교육현장의 현실을 정확히 분석하고 교수의 본래 모습을 생각하고 돌아가게 되면, 행복교수가 가장 존경받는 교수의 원형이며, 행복에 대해 인문학적인 지혜와 지식을 먼저 터득한 선생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내가 2000년부터 발전시켜온 행복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안을 찾아가는 방식이었고, 그 대안으로 제시하게 된 것이 행복 인문학이며, 나는 행복 인문학을 통해 행복인생경영을 멘토링하는 방법을 다양한 행복 프로그램들로 2011년도부터 정부에 자격과정으로 등록하여 왔고 인재를 배출했다. 그리고 2025년부터는 이러한 것들의 최고 정점에 세계 최초로 합법적 교수 자격을 취득하게 된 행복교수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나는 행복을 감정 관리나 심리 처방 정도로 축소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행복은 철학만 아니라 역사와 종교를 포함하여 포괄적인 인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 구조를 재건할 때 비로소 의미와 방법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대가 아무리 과학사회로 변한다고 하더라도 대략 60조 개 세포로 구성된 인체 매커니즘과 그 조건하에서 생존 가능한 제한적 생명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누구나 고대의 근원적 물음과 성찰과 교육으로 다시금 돌아가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인간이란 왜 돼지같은 동물과 차원이 다른 존재이며, 좋은 삶이란 무엇이고, 착한 삶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형이상학적 의문과 깊은 성찰로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해야 하는 스승이 바로 행복교수이다. 내가 말하는 행복교수는 박사학위를 몇 개 취득한 일반대학교 특정 학과의 전공 교수가 아니다. 행복교수는 인간의 삶 전반을 다루는 철학자이고 통합 교육자이며, 행복 인문학이라는 신학문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행복 코디네이터 전문가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교수를 행복 인문학의 계승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복교수의 자격 명칭과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행복교수는 대한민국의 「자격기본법」에 근거하여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국내 최초로 내가 2025년에 등록한 민간자격 명칭이다. 국가자격이나 대학의 정교수 직위가 아니라, 법적으로 허용된 교육, 상담, 강의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교수임을 증명하는 민간자격이다. 이는 불법도 아니며 교수를 사칭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 정말 필요한 교육 역할에 대한 혁명적이고 창의적이고 본래적인 응답이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창시한 행복 인문학이나 행복교수라는 명칭은 21세기를 만든 지식인들의 표상인 기술 학문이나 학위가 아니라, 인간다움을 가르치고 참된 행복인생경영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전문가로서의  학문이나 자격이나 역할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분량으로 받는 학위라는 간판이 아니라 지혜의 가치로 따져가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는 행복교수라는 자격이 어떤 철학 위에 서 있으며, 사회에 어떤 가치를 환원하는가가 핵심이 된다. 

행복교수의 가치는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만드는 것에 있다. 따라서 행복교수는 다음 몇 가지를 주력하는 행복전문가이다. 

첫째,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스승이다. 성취와 경쟁에 중독되어 기이한 삶, 아주 비판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배만 채우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주인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 평생 짖다가 죽는 개처럼 1차원적 욕구 충족에 허덕이는 삶을 살다가 죽어 소각장에서 태워져 사라져가는 현대인에게 “당신의 삶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를 묻고 삶의 의미를 깨닫고 수정하게끔 하는 인생 스승이 바로 행복교수이다. 

둘째,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신뢰를 회복하는 스승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신뢰가 무너지면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가 붕괴된다. 고독사와 자살률이 늘고 사이코나 소시오패스가 증가하며, 현대사회가 전쟁으로 치닫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근본적으로 신뢰가 무너지고 불신이 팽배해지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행복교수는 삶의 방향과 품격있는 인간다운 삶의 질로 삶의 목표와 방식 등을 교정해주고 치유하고 회복을 돕는 진정한 인생 멘토이다.

셋째, 인생 아마추어를 인생 프로가 되게끔 이끌어주는 스승이다. 행복교수는 행복을 말로 끝내지 않고, 삶의 습관과 선택으로 실천하게끔 이끌어 주는 교육 전문가이다. 행복교수는 단순히 삶을 교정하는 소극적 치유자가 아니다. 행복교수는 삶을 병들게 하는 구조를 통찰하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성찰하게끔 하고, 그것을 토대로 행복인생경영을 스스로 구축해 가도록 이끌어 주는 행복 코치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본주의의 그림자인 물질자본시대를 지나 행복 인문학이 추구하는 생명자본시대로 향해야 한다. 생명자본시대의 핵심 가치는 돈이나 부유함이 아니라 사람, 관계, 신뢰, 의미를 회복함으로써 가능한 부요함에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행복교수는 머리를 무겁게 만드는 논문 생산자가 아니다. 건강하고 건전하고 정의로운 삶의 해석자가 바로 이 시대에 교육의 지향점이 되는 행복교수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교수가 일반적인 지식과 기술 전수의 학교라는 의미를 넘어 지역 공동체로 나가야 하고, 강의실이라는 울라티를 뛰어 넘어 행복한 삶을 갈망하는 클라이언트에게로 나아가는 실천성이 강한 행복 전문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교수는 젊은 학생만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와 직장인과 시민에게 행복 프로그램으로 다가서는 라이프 코칭 전문가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성찰하고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이다. 

결론적으로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본래 모습의 교수는 지금 21세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거의 다 삶의 기술적인 부분을 강화시키는 기술자들이며 교육을 명분으로 대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란 인간을 근본적으로 성직자처럼 진리와 자유를 가르치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깨우치는 지혜로운 삶의 전문가여야 한다. 잔소리 같지만 내가 국제웰빙전문가협회를 통해 정부에 등록하여 발급하는 행복교수라는 직함은 새로 생긴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잊혀젔던 교수의 원형에 대한 회복이다. 

나는 행복인문학사 과정을 거친 자에게 행복인문석사 과정에 등록하도록 단계별 시스템을 만들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자라고 하더라도 예외없이 행복인문학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행복인문석사를 마친 사람이 행복박사 과정에 진입하도록 하였다. 행복박사 과정에는 행복인문박사, 행복교육박사, 행복철학박사, 휴먼디자인박사가 있다. 행복교수는 행복박사 과정을 거쳐 박사 자격을 취득한 자들 중에서 선별하여 훈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2025년 12월까지 15명의 행복교수가 대한민국 최초로 자격을 가진 행복 전문가로 탄생되었다. 이를 토대로 나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행복 인문학회를 통해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행복 돈키호테가 되어! 

<글> 김용진 행복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행복 인문학 센터 총장, 행복 인문학회 학회장, 행복 인문학 창시자